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만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

첫사랑에는 방부제가 발라져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토록 잊여지지 않고 오래 기억이 난다고 말이다. 당장 느닷없이 던지는 이 질문에 답해보자.

당신의 첫사랑은? 그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되도록이면 절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지 말길, 첫사랑을 잊으려고 기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길 권한다. 하지만 분명 그 대상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첫사랑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것을 보면 다른 사랑이 아닌 유독 첫사랑에는 방부제가 발라져 있는 게 맞다.

첫사랑에 대해서 사람들은 마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그땐 내가 너무 뭘 몰랐다고,

미숙했다고,

우린 아마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고…

미지근하게 그때의 기억을 웃어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출 수 없는 슬픔과 가슴져밈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듯 생생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젊은 천재 작가라가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2007년작 <초속 5센티미터>를 본 후 극명하게 나뉘는 두 개의 영화평처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평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내 취향은 아닌 것 같아 하며 미지근하게 그냥 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일 내내 그 먹먹함에 밥을 제대로 넘기지 못할 정도의 감정의 동요에 휘감긴 사람들이 있다.

감독은 말했다. 첫사랑에 성공한 사람보다는 첫사랑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그래서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하지만 감독의 영화 연출 의도와는 정반대로 많은 관객들은 말했다.

위로가 아니라 상처를 후벼 파는 것 같았다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고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미지근한 첫사랑으로 그저 그 기억이 흐릿해진 내게는 그저 두 주인공의 사랑이 너무 애절해 안타까웠다. 역시나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내 사랑 근처에는 언제나 휴대폰이란 물건이 있었다. 그래서 안타깝게 어긋날 일도, 천재지변으로 누가 누굴 하릴없이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했었던 남자 주인공 타카키와 여자 주인공 아카리는 갑작스러운 아카리의 전학으로 인해 멀리 헤어지게 된다. 이별은 힘들었지만 꾸준히 편지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1년여 만에 다시 만나기로 한 날 하필 폭설이 내린다. 지하철은 계속 지연이 되고 타카키는 그저 바랄 뿐이다. 아카리가 더 이상 자신을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기만을 말이다. 약속 시간보다 한참을 늦은 타카키는 축 처진 어깨로 역에 들어서고 그곳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을 기다리는 아카리를 만나게 된다. 다 식은 도시락과 싸온 차를 나눠먹고 그들은 눈 길을 걷다 달콤한 키스를 나눴지만 물리적인 먼 거리만큼이나 둘의 마음의 거리 역시 점 점 멀어진 게 된다.

총 3편으로 나눠진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영화 내내 눈과 또 다른 눈을 상징하는 벚꽃이 등장한다. 1편의 학생 타카키와 아카리가 사랑할 때도 또 헤어질 때도 2편의 또 다른 주인공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서도 3편의 어느새 어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의 모습에서도 말이다. 영화의 제목 초속 5센티미터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라고 했다. 알 수 없지만 눈이 내리는 속도 역시 봄의 눈,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만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의 속도는 안타깝게도 서로가 너무나 다르다.

사랑하는 속도뿐 아니라
그 둘이 삶을 사는 속도도
세상을 바라보는 속도도

그래서 그 자신이 변화하는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변화의 속도로 삶의 방식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렇게 삶을 꾸리면서 처음에 같은 속도의 하나는 다른 속도의 다른 둘이 된다.

사람의 속도가 하나일 수 있을까?

사랑의 속도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사랑에도 속도가 있음을. 그리고 이것을 아는 것 자체가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랑의 속도를 알게 해 준 영화 <초속 5센티미터>. 그래서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랑에 더 좋은 선택을 해야겠다 일깨워준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사랑의 속도는 서로 다르지만 마치 사랑은 정원 같아서 각기 다른 속도로도 함께 꾸며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독의 2013년 작품의 제목이 <언어의 정원>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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